서류 뭉치를 들고 창구 앞에서 서성이던 날

서류 뭉치를 들고 창구 앞에서 서성이던 날

서류 더미와 마주한 첫날의 막막함

사업자를 내고 나면 뭐든 알아서 굴러갈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주변에서 다들 정부 지원금이나 정책 자금이 잘 되어 있다고들 해서, 나도 조금 얕잡아 본 게 사실이다. 막상 기술보증재단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용어들만 가득했다. 기술 평가라는 게 도대체 뭔지, 내가 하는 이 작은 일에 무슨 기술이 들어가나 싶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춘천에 있는 센터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가기 전에는 무슨 컨설턴트처럼 서류를 착착 준비해서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필요한 서류 목록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합격 수기’들은 왜 그렇게 다들 척척 해냈다는 건지, 따라가려니 마음만 급해졌다.

대기 시간과 창구에서의 묘한 긴장감

지점은 아침 일찍 도착했는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대기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는데, 다들 나처럼 서류 봉투를 꼼꼼히 확인하고 있었다. 왠지 모를 동질감과 함께 긴장감이 밀려왔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내 차례가 되어 상담 창구에 앉았다. 담당자분은 친절했지만, 말투에는 묘한 사무적인 벽이 느껴졌다. 내가 가져간 서류를 훑어보더니, 이건 지금 당장은 필요 없고 오히려 저쪽에 있는 서류가 중요하다며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셨다. 왠지 내가 헛짓거리를 한 것 같아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이거 하려면 보통 3주 정도 걸려요’라는 말에, 당장 다음 달 카드값을 걱정하던 내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생각해보면 정책이라는 게 나 같은 개인이 빨리빨리 움직인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생각보다 더 까다로웠던 현장 검증

준비 과정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현장 실사였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그냥 작은 작업실인데, 거기를 굳이 보고 싶다고 하니 참 난감했다. 중고 지게차 하나 들여놓고 좁은 공간에서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려니 민망하기도 했다. 실무자가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마케팅 비용을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 해서 한참을 쩔쩔맸다. 사실 마케팅이랄 것도 없이 그냥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 장 올리는 게 다였는데, 그걸 비즈니스 모델로 설명하려니 말이 꼬였다. 정책 자금이라는 게 결국 ‘증명’의 싸움이라는 걸 그때 실감했다. 돈을 빌려줄 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버티기 힘든 상황인지를 판단하는 그들의 기준은 냉정했다. 그날 밤, 꽤 우울한 기분으로 마이너스 통장 잔고를 다시 확인하며 한숨을 쉬었다.

국비지원 학원과 또 다른 벽

자금 조달이 막히는 것 같아 방향을 조금 틀어보려고 국비지원 캐드 학원을 알아봤다. 기술이라도 제대로 익혀야 하나 싶어서였다.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는 건 생각보다 쉬웠는데, 막상 수업을 들으려니 시간이 문제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업을 듣는 강행군을 며칠 해봤는데,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강사님은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사업 고민뿐이라 진도가 안 나갔다. 주변에 취업 연계가 잘 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정작 나 같은 개인사업자 입장에서는 취업이 아니라 지금 사업을 유지하는 게 급선무였다. 지원금 받으려고 듣는 수업이 오히려 본업을 방해하는 느낌이 들 때마다, 이게 맞나 싶은 의문이 계속 따라다녔다.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들

지금도 정책 자금 몇 군데에 지원은 해놓은 상태지만, 연락은 없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만큼 모든 게 일사천리로 풀리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겠다. 뉴스에서는 뭐 반도체 산단이다 뭐다 해서 큰 규모의 지원책이 쏟아지는데, 정작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좁은 골목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루하루 버티는 게 최선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뭔가 중요한 절차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함이 가시질 않는다. 다음에 창구에 다시 가게 된다면, 이번에는 좀 더 당당하게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 오늘 할 일부터 마저 끝내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전략인 것 같다.

댓글 1
  • 국비 지원 수업 들으면서 사업 고민만 하다 보니,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사업 계획을 더 꼼꼼하게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