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만 열 번 넘게 고치다 보니 이게 뭔가 싶었다
처음엔 그냥 사무실 보증금이라도 어떻게 좀 해결해보려고 정책자금을 알아봤다. 다들 하는 소리가 창업지원자금 받으면 이자도 싸고 조건도 좋다길래, 그게 내 얘기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준비해보니 무슨 논문 쓰는 것도 아니고 자금조달계획서 양식을 채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칸마다 정성껏 내용을 적어 넣었는데, 담당자 전화 한 통에 다시 전부 갈아엎어야 했다. 이게 사업을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서류 잘 쓰는 기술자가 되겠다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가 가진 기술과 시장성에 대해 썼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이건 자금 성격이랑 맞지 않아요’라는 매몰찬 소리뿐이었다.
지식산업센터 담보 대출의 늪
조금 무리해서라도 지식산업센터라도 하나 구해서 들어가면 대출이 좀 수월할까 싶어 주변 부동산을 기웃거렸다. 요즘은 지식산업센터 대출이 그나마 제일 현실적인 문턱이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담받으러 갔다가 덜컥 겁부터 났다. 담보가 부족하면 신용보증기금 쪽을 두드려보라는데, 거긴 또 거기가 나름대로의 넘기 힘든 벽이 있었다. 대출 한도가 생각보다 낮게 잡히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상 내가 원했던 2~3억 원은 꿈도 못 꿀 액수였다. 매달 나가는 관리비나 이자 비용을 계산해보면, 내가 지금 이걸 감당하면서 사업을 시작하는 게 맞는지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팁스니 R&D니 다들 딴 세상 이야기 같아
뉴스 보면 리벨리온 같은 데는 수천억씩 투자를 받는다는데, 나는 왜 몇천만 원 구하기도 이렇게 힘들까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R&D 자금 지원이니 팁스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들은 다들 박사급 인력이 즐비한 곳이나 가능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냥 소박하게 내 기술 하나 믿고 시작한 건데, 정부가 말하는 ‘생산적 금융’이라는 게 과연 나 같은 사람에게도 닿아 있는 건지 의문이다. 창업 지원 프로그램 목록을 보다 보면 화려한 이름들만 잔뜩 적혀 있는데, 막상 내가 필요한 당장 눈앞의 운영비는 쏙 빠져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컨설팅 비용으로 몇 백을 쓰라는 소리에 한숨만
한번은 소상공인 정책자금 컨설팅을 해준다는 곳에 상담을 간 적이 있다. 다들 ‘대행’을 맡겨야 확률이 높다고 하길래 혹해서 갔는데, 대뜸 수수료로 수백만 원을 요구했다. 성공보수 명목이라는데, 사업이 잘 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 돈을 덜컥 내는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혼자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인터넷 카페며 정부 기관 사이트를 뒤지며 밤을 새웠는데, 막상 신청 기간은 왜 그렇게 짧은지. 한 번 놓치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하니 속이 타들어 가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결국은 통장에 찍히는 돈이 전부다
결과적으로 정책자금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내가 지원했던 곳 중 하나는 서류 통과까지는 됐는데, 현장 실사에서 담당자가 내 사업장의 구석구석을 보며 한숨을 쉬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결국 최종 승인은 떨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소모된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이게 남는 장사였는지 잘 모르겠다. 정책자금 신청 기간 동안 마케팅이고 영업이고 다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받은 게 어디냐’고 하지만, 막상 융자금 상환 스케줄표를 받아들고 나니 기쁨보다는 묵직한 돌덩이 하나를 짊어진 기분이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온다면 과연 똑같은 수고를 들여서 다시 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업 준비하는 과정이 정말 답답하게 느껴지네요. 제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제도 자체보다는 현실적인 운영비 마련에 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