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가 사람을 잡는다
며칠 전부터 사무실 한쪽 구석에 쌓아둔 서류 뭉치를 보는데 숨이 턱턱 막혔다. 정부 창업지원금이라는 게 사실 말은 거창한데, 뜯어보면 결국 자금조달계획서랑 사업계획서와의 싸움이더라. 예전에는 서울시에서 뭐 한다 하면 일단 신청부터 넣고 봤는데, 이번엔 좀 다르다. 뭐라도 하나 제대로 써서 제출해보려니 손이 안 떨어진다. 지난번에 소상공인신용보증재단 갔을 때 상담 창구 직원이 했던 말이 자꾸 맴돈다. ‘사장님, 매출 증빙이랑 자금 흐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셔야 해요.’ 그날 상담비는 무료였지만, 내 시간을 대가로 쓴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7천만 원의 무게와 현실
보통 소상공인 정책자금이 7천만 원에서 1억 원 사이로 나오는데, 금리도 보증료 합치면 생각보다 낮지 않다. 사실 처음에는 무조건 공짜 돈이라고 생각해서 덤볐다가, 대출 형태가 섞여 있다는 걸 알고는 김이 좀 샜다. 그렇다고 당장 현금이 도는 것도 아니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서류를 파고 있는 거다. 어제는 새벽 2시까지 회사 개요 쓴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예전에 썼던 계획서를 다시 꺼내보니, 그때의 내가 꽤나 철없어 보이더라. 시장 분석은 너무 낙관적이고, 재무 계획은 그냥 희망 사항 수준이다.
커피값 아껴서 뭘 하나 싶다가도
창업캠퍼스타운이나 뭐 이런 곳에서 하는 지원 사업도 기웃거려 봤다. 최대 2천만 원까지 준다는데, 경쟁률을 듣고 나니 벌써 힘이 빠진다. 이걸 받으려고 퍼실리테이터를 만나고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데, 당장 내일 발주 들어올 물건 포장하기도 바쁜 사람한테 너무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자영업자대출 알아보러 은행 창구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이쪽이 그나마 금리가 낮으니 매달리는 거겠지.
아무도 안 알려주는 디테일
가장 짜증 나는 건 서류마다 요구하는 양식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서울경제진흥원 양식은 또 이화여대기술지주랑 연계해서 그런지 뭔가 더 학술적인 느낌이 강하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양식은 또 다르고. 같은 내용을 쓰는데 왜 문항은 다 다를까. 어제는 제출 버튼 누르기 직전에 파일 하나 잘못 첨부한 걸 발견해서 다행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수로 이전 사업계획서 초안을 올렸으면 어쩔 뻔했나. 이런 사소한 실수를 할 때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멍해진다.
아직도 진행 중인 서류 작업
결국 오늘 아침에도 서류를 다시 검토했다. 3년 뒤 매출을 추정하라는 칸이 있는데, 솔직히 한 달 뒤 매출도 장담 못 하는 상황에서 이걸 쓰자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냥 적당히 성장세 맞춰서 기입하고 넘기기로 했다. 이게 맞는지 틀린지 봐줄 사람도 없다. 어차피 탈락하면 그만이고, 붙으면 운이 좋은 거겠지. 마음은 좀 불안한데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이제는 노트북 덮고 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야겠다. 지원금 신청이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진 빠지게 하는지 모르겠다.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새벽까지 계획서를 수정하다가 지쳐본 적이 있어요. 매출 예측을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문제더라고요.
계획서 다시 보니까, 당시의 낙관적인 시장 분석이 진짜 안타깝네요.
3년 뒤 매출 예측 칸은 정말... 지금 당장 매출이 불투명한데 그걸 써야 한다니, 저도 그런 경험 때문에 엄청 당황했었어요. 좋은 아이디어네요.